원시 혈족의 부족들
Kiths of the Primal Blood
“혈족들이여, 우리에게도 이 세계에도 안식은 없으리라는 것을 알아라. 우리는 어머니와 아바크라에게 저질러진 죄악의 증인이지만, 우리의 손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파국 앞에서도 굳건히 서서 견뎌라. 그들은 우리를 부수려 하겠지만 우리의 육신은 돌과 같고, 우리를 사슬로 묶으려 하겠지만 그 사슬로는 우리의 영혼을 구속할 수 없다. 타크라를 길잡이로 삼아라. 함께 서서 살아남아라.”
— 전사 예언자 옥트나의 말로 전해짐
셀레지아 서부에는 빽빽한 잎과 푸른 나무로 뒤덮인 거대한 숲이 야생의 심장을 품고 있다. 그곳에는 문명이라는 허울에 아랑곳하지 않는 전사와 주술사가 산다. 그들은 세계를 어머니라 부르고, 그 영혼은 야성적인 찬가를 읊는다. 한때 한목소리로 울리던 노래는 이제 갈라지고 어긋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의 불협화음이 되었다. 이들이 바로 원시 혈족의 부족들이다.
원시 혈족은 오스테라스의 압제에서 오에리칸을 해방한 전사 예언자 옥트나의 인도 아래 한때 하나였다. 그러나 해방자가 사라진 뒤 이미리스의 자손들을 이끄는 데 필요한 자질을 모두 갖춘 지도자가 없었고, 원시 혈족은 수많은 부족으로 갈라졌다. 수천 년 전 옥트나가 세운 핵심 철학인 쌍둥이 타크라는 부족들이 공유하는 기반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 부족을 하나의 깃발 아래 묶을 수 없다. 각 부족은 고유한 문화와 전통, 옥트나의 가르침에 대한 자신들만의 해석으로 결속되어 있다.
각 부족의 지도권은 코르-타크라라는 칭호를 받는 가장 강한 광전사와 우르-타크라로 불리는 가장 현명한 주술사가 나누어 갖는다. 옥트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이 힘의 균형은 자주 무너지며, 대부분의 부족은 사실상 코르-타크라가 다스린다. 다른 강대국들은 서로 다른 부족을 ‘팍소스의 원시 혈족’이라는 하나의 나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그들의 복잡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단순한 관점이다. 통일된 하나의 중심 철학이 없다는 사실은 부족들 사이의 쓰라린 내분으로 이어졌고, 그들은 바깥의 적보다 서로를 쓰러뜨리는 데 집중했다. 그래도 차이와 충돌을 부르는 적의가 아무리 깊어도, 아바크라의 심장에서 솟은 거목의 그늘 아래에서는 모두가 하나인 이미리스의 자손으로 대우받는다. 그곳에서 부족끼리 폭력을 쓰는 일은 중대한 신성 모독으로 여겨진다.
부족은 넓게 말해 공통된 관점과 문화를 공유하는 수백 명의 원시 혈족이 모인 공동체다. 각 부족이 서로 독립된 생태계나 다름없다고 해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 이상의 부족이 힘을 합치면 군세가 태어난다. 군세에 속한 여러 부족은 이따금 모이지만 오래 함께 머물지는 않는다. 어떤 군세는 아스타리스 성벽이나 자유 도시들을 향해 진군하는 대군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동맹 부족의 연계망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연계망의 중심에는 언제나 크고 영향력 있는 부족이 있으며, 보통 그 부족의 이름이 군세 전체의 이름이 된다. 중심 부족이 파괴되면 팍소스의 세력 균형이 뒤바뀔 수도 있다.
수백 부족 가운데 유독 높이 이름을 떨치는 이들이 있다. 다음과 같다.
현재 원시 혈족에서 가장 큰 군세인 주리는 천둥걸음이 말레딕션에서 나타난 뒤 결성되었다. 그를 처음 발견한 주술사들이 티란을 돌아온 전사 예언자라고 선포한 것이다. 천둥걸음을 전사 예언자로 받아들이고, 그를 대신해 말하는 주술사인 천둥의 목소리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부족만 이 군세에 들어갈 수 있다. 주리에는 천둥걸음과 싸워 살아남은 명예로운 광전사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전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의 이름은 이야기를 들은 이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아무리 흉터투성이가 되었어도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바크라의 축복으로 여겨진다. 주리 군세의 부족들은 천둥걸음을 따라 죽음의 물결처럼 팍소스를 휩쓸며, 지나간 자리에 짓이겨진 시체의 수렁을 남긴다. 셀레지아의 강대국들은 그 위험을 잘 알고 있다. 오릭조차 그들이 신 오스테라스를 공격한다면 어찌 될지 두려워한다.
옥트나가 사라진 뒤 한때 원시 혈족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이었던 인'그록 왕조는 위대한 광전사의 혈통이 다스렸다. 다른 군세나 부족과 달리 권력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졌고, 누구도 인'그록 혈통에 맞설 힘이 없었다. 인'발크가 천둥걸음의 손에 죽은 뒤 왕조는 무너지기 시작해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 인'고르의 운명을 가른 패배로부터 40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왕조는 자신의 이루지 못한 통치를 재건하고 싶어 하는 탐색자를 따르는 이들을 통해서만 명맥을 잇는다. 인'고르의 지도 아래 재건된 왕조는 부족에서 배척당한 모든 이의 피난처로 알려지게 되었다. 어떤 죄를 지었든, 금단의 마법을 다뤘든 시련에 실패했든, 왕조는 억눌린 자를 모두 받아들이고 더 강해지라고 권한다.
열병노래는 투쟁의 시대부터 이어져 온 원시 혈족의 가장 오래된 부족 중 하나이자 한 군세의 중심이다. 원시 혈족에게 죽음은 영혼이 마침내 만물의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이미리스와의 궁극적인 교감이다. 그러나 대몰락 이후 이 과정은 끊어졌고 죽음은 어긋나 버렸다. 혼령과 그 에코는 세계에 남아 길을 잃은 채 여신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일부는 이 존재들의 지혜와 분노를 불러내는 법을 익혔다. 열병노래 부족은 이야기를 담은 노래와 의식의 춤으로 옛 영웅의 전승을 재현하고, 그 위업을 불러내 기억하고 보존하며 다시 살아낸다. 영혼을 열면 그 전사들과 이야기에 빙의되어, 짧은 순간이나마 그 기술을 배우고 힘을 나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완전히 삼켜져 전혀 새로운 무언가가 된 이들도 있다.
부족이자 군세의 중심인 사르부는 원시 혈족이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깨달은 몇 안 되는 집단이다. 이들은 이미리스에게서 스며 나오는 분노와 고통을, 자아를 벗겨 내는 광기의 구름이라는 본모습 그대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을 통제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들의 길은 이미리스에게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의 눈에서 질서를 배우고 찾는 것이다. 사르부 부족의 구성원은 이미리스가 태고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할 때 사용한 설계가 그녀의 모든 창조물에 담겨 있다고 본다. 포식자의 은밀한 추적, 먹잇감의 끈기까지 이들에게는 모두 본받아야 할 자연의 질서이자 가르침이다. 마침내 내면의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부족의 구성원이 이 길을 깊이 걸을수록 더욱 짐승처럼 변해 뿔과 발톱, 송곳니, 털, 심지어 날개까지 자라기도 한다. 일단 길에 들어서면 결코 벗어나서는 안 되며, 내면의 괴물이 자랄수록 길을 잃기는 점점 쉬워진다. 부족의 장로들은 변신체와 비슷하지만 더 우아한 형상을 지니고 야성을 통제하는 완전한 수인으로 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적을 쓰러뜨릴 수단은 얼마든지 갖추고 있다.
안타락스는 원시 혈족 사이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다. 이 부족의 구성원은 쌍둥이 타크라가 아니라 ‘위대한 의식체’ 안타락스의 지식과 영향력 아래 모인다. 대몰락보다도 오래되었다는 자신의 말을 믿는다면, 이 존재는 원시 혈족에게 자유를 제안한다. 다른 부족이 자아를 연마하고 개인으로서 강해지는 데 집중하는 반면, 안타락스는 전체의 일부가 되어 얻는 힘을 제시한다. 자아와 자기 인식을 버리면 안타락스와 하나가 되어 고통과 혼란, 선택이라는 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수많은 육신을 거느린 안타락스는 원시 혈족의 부족들을 찾아다니며 다친 자를 돕고 병든 자를 정화한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고는 그 존재와 이어지는 연결인 ‘포자의 선물’을 남긴다. 시간이 지나면 안타락스의 사절에게 보살핌을 받은 이들의 몸에 균류가 자라기 시작하고, 마침내 생각 속에 깃든 그 존재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타락스는 이미리스의 종을 자처하지만, 그에게 다른 계획이 있을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이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