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LEDICTION / 설정 이야기

천둥의 외침―1부

The Cry of Thunder –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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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의 외침―1부

The Cry of Thunder – Part 1

주리의 오에리칸 광전사인 우로그는 아들이 자기 민족의 도리를 너무나 모른다는 사실에 속이 탔다. 가란이 살아남으려면 알아야 할 것들을 가르치지 못한 자신에게는 더 화가 났다. 아이는 아직 성년이 아니었다. 목숨을 빼앗아 본 적도, 와라나를 맛본 적도 없었으니,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호주크를 더럽히고 의식을 망칠 수 있었다. 가란은 또래에 비해 힘이 셌고, 아버지는 아들이 훌륭한 전사로 자라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힘만으로는 주리의 일원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아이에게는 앎이 필요했다. 천둥의 목소리들이 하는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해야 했다. 우로그는 머릿속에서 걱정을 떨쳐 내려 했다. 이런 것들뿐 아니라 다른 많은 것도, 나중에 아이에게 가르칠 시간이 있을 터였다.

우로그는 다른 광전사 스무 명과 함께 불에 그을린 호주크의 땅을 가로질러 행진했다. 가란과 다른 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벌을 받아 벌써 몸에 그 흔적이 남은 아이도 있었다. 북소리와 달그락거리는 타악기 소리가 전사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마다 낙월 흑요석과 태고의 점토로 새로 만든 칼을 들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는 천둥의 목소리가 무언가를 선포하고 있었지만, 우로그에게는 아직 그 말이 분명히 들리지 않았다. 설령 들렸다 해도 그의 눈길은 주리의 코르-타크라에게 붙들려 있었을 것이다. 다시 태어난 전사 예언자, 포효로 적의 심장에 공포를 심고 아군의 가슴에 이미리스의 분노를 불붙이는 자. 천둥걸음이었다.

여덟 살 가란은 짧은 다리로 아버지를 따라가느라 애를 썼다. 발걸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것은 덜 자란 몸이 아니라 마음속의 나약함이었다. 언덕 위에서 위대한 천둥걸음이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천둥의 목소리들이 가르치는 모든 것에 어긋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무서웠다. 전에 천둥걸음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그에게서 무언가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본능, 어른들은 느끼지 못한 척하는 그런 것이었다. 어린 가란의 눈에도 어른들의 얼굴에 어린 두려움이 보였다. 언덕 꼭대기에 이르자 다른 아이들은 흩어져 둥글게 모인 구경꾼들 틈으로 들어갔다. 가란은 아버지의 방패 뒤에 숨어, 자신을 그토록 두렵게 하는 존재의 붉게 빛나는 눈을 바라보았다. 천둥걸음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순간, 아이는 코르-타크라가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로그는 아들이 괜한 눈길을 끌지 않게 해 달라고 아바크라에게 빌며, 다른 아이들에게 가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앞의 위대한 존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로그는 아이를 꾸짖지 않기로 했다. 그 기분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진정한 힘을 눈앞에서 보았을 때 넋을 빼앗기는 기분을. 마침내 우로그의 주의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오늘 천둥걸음을 대신해 말하는 목소리, 칼리레브가 전사들에게 다가오라고 명했다. 의식이 시작되었다.

말레딕션 공식 삽화 — Heartstab Crop

전사들은 하나씩 코르-타크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우월함을 인정하며 검은 유리로 된 칼을 내밀었다. 광전사들은 저마다 심판을 받아야 했다. 천둥걸음이 손을 뻗어 칼날에 손가락을 베고 자신의 피를 발라 주면, 그 전사는 심판을 통과한 것이었다. 손 전체로 칼을 움켜쥐어 부숴 버리면, 천둥걸음의 눈에 들지 못한 것이었다. 다음 전투에서 누릴 명예로운 자리도 빼앗겼다.

차례가 오자 우로그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곧바로 천둥걸음 앞에 무릎을 꿇고 검을 바쳤다. 그제야 아들이 떠올랐다. 고개를 숙인 채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곳을 돌아보았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우로그는 안도했다. 가란이 정신을 차리고 다른 아이들에게 갔거나, 사람들이 아이를 둥글게 모인 구경꾼들 뒤로 끌어냈으리라 생각했다. 나중에 찾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가란은 아버지를 따라와 왼쪽에 서 있었고, 전사의 방패에 가려져 있었다.

가란은 자기가 어떻게 그곳까지 왔는지 잘 몰랐다. 천둥걸음의 진홍빛 눈을 들여다보는 사이, 늘 그렇듯 다리가 알아서 데려다 놓은 모양이었다. 잠깐은 두려움조차 잊고 있었다. 이제 모두가 자신을 보는 것 같았으니, 아마 와서는 안 될 곳에 와 있는 듯했다. 가장 무서운 얼굴은 천둥걸음 곁에 선 심술궂은 여자의 얼굴이었다. 아버지가 무릎을 꿇은 자리 맞은편에 서 있는 여자였다. 그 얼굴에 떠오른 놀라움이 분노로 바뀌었다. 사방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와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가 방패 위로 고개를 들어 놀란 눈으로 가란을 보았다. 아이는 아버지의 표정도 곧 화난 얼굴로 바뀌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감정이 떠올랐다. 두려움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무서워진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우로그는 너무 놀라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아이가 코르-타크라 앞에서 울고 있었다! 이 어리석은 놈!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보여 주겠다고 가란을 여기까지 데려온 자신이야말로 어리석었다. 아이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저들이 가란에게 무슨 짓을 할까? 천둥의 진노는 전설적이었고, 칼리레브는 말 한마디로 그것을 불러낼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지만, 눈빛 하나로 우로그에게 행동을 요구했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 아이를 벌해 전사로서의 명예와 의식의 온전함을 지켜야 했다. 바로 여기서, 지금, 자기 핏줄에서 나약함을 도려내야 했다. 겨우 몇 순간이 흘렀을 뿐인데도 아이의 울음소리는 영원처럼 귀를 울렸다. 모두가 그들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천둥걸음도 그들을 보고 있었다. 아바크라시여, 천둥걸음이 내 아이를 보고 있다! 부족의 강함을 지킬 것인가, 자식을 보호할 것인가. 그 사이에서 갈등하던 우로그는 나약한 자의 길을 택했다.

말레딕션 공식 삽화 — StormsEye_BG

눈물에 가려 앞이 거의 보이지 않던 가란은 갑자기 두 다리가 들리며 몸이 땅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주위 사람들이 저마다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잠시 뒤에야 자신이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팔에 비친 붉은 빛이 폭풍의 눈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그보다 더 늦게 알아차렸다. 아버지는 천둥걸음을 향해 흑요석 칼을 겨누고 있었다. 천둥의 목소리는 이제 격노했고, 사람들은 고함을 질렀다. 무슨 말인지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가란도 자기 민족이 피를 갈구하는 마음을, 그리고 오늘은 자신이 그 표적이라는 것을 알 만큼은 자랐다. 그때 그보다 더 큰 소리,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한 소리가 다른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어른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두려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의 가슴은 그 소리에 따뜻해졌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어도 그랬다. 가란에게는 하늘이 웃기 시작한 것처럼 들렸다.

우로그는 정신이 나간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확신했다. 먼저 그는 부족 앞에서 나약함을 드러냈다. 방패를 내던지고 우는 아들을 안아 들었다. 이 신성한 의식을 모욕한 아이를. 부족보다 제 자식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칼리레브가 단검을 뽑아 그에게 다가왔다. 천둥걸음의 진노가 부족을 덮치기 전에 우로그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 우로그는 칼을 들어 그녀에게 겨누었다. 이어 몸을 돌려, 들끓는 군중을 필사적으로 물리치려 했다. 마지막으로 폭풍의 눈이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느꼈을 때, 그는 천둥걸음에게 칼을 겨누었다.

말레딕션 공식 삽화 — EndlessRage

절망에 사로잡힌 우로그의 귀에 심장이 멎을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둥걸음이 내는 우르릉거림은 깊디깊은 협곡 밑바닥에서 산 하나가 가루로 갈리는 소리 같았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였다. 천둥의 목소리들 중 누구도 그런 소리를 설명한 적이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칼리레브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도 똑같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주리 군세의 코르-타크라가 몸을 일으켰다. 우로그와 다른 모든 이들이 그 앞에서 작아졌다. 그는 늘 그렇듯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잠시 기다렸다. 가슴속 두려움에도 아버지의 검은 눈앞의 존재를 향해 흔들림 없이 겨눠져 있었다. 천둥걸음은 답답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더니 거대한 손을 뻗어 흑요석 칼날을 감쌌다. 이걸로 끝이었다. 칼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의 운명도 결정될 것이다. 자기 목숨만 거두고 아이는 치욕 속에서나마 살게 해 준다면 다행이었다.

가란은 이제 울음을 그쳤다. 아버지가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우로그의 팔은 여전히 아이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 천둥걸음이 일어섰을 때도 아버지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 자리를 지켰다. 코르-타크라가 거대한 손으로 검은 칼날을 움켜쥐자 아버지의 몸이 굳었다. 손을 놓았을 때 칼날은 피로 뒤덮여 있었고, 천둥걸음의 손에는 깊은 상처가 가로질러 나 있었다. 피 묻은 손이 아이와 아버지를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가란은 이제 그 손이 무섭지 않았다.

우로그의 칼은 멀쩡했다. 칼에도, 그 자신에게도 천둥걸음의 피가 발렸다. 칼리레브는 항의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천둥의 목소리라 해도 이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려진 인정에 이의를 제기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우로그는 다가올 전투를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말레딕션 공식 삽화 — BloodfrenzyBerserker scaled

오늘 밤에는 실컷 마시고 아이를 꼭 안아 줄 것이다. 내일은 가란을 꾸짖고, 자기 민족의 도리를 가르칠 수 있는 만큼 가르쳐 준 다음 부족의 아이 돌보는 이들에게 맡기리라. 그리고 며칠 뒤에는 전장에서 천둥걸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는 영예를 누릴 것이다. 그에게 내려진 영예는 창끝이 되어, 맨 먼저 적의 피를 흘리게 하거나 자신의 피를 흘리는 것이었다. 천둥걸음이 왜 자신을 살려 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는 자부심을 품고 주리를 섬기리라.

가란은 그날 밤의 시련으로 녹초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나중에 아버지에게 설명해 달라고 해야겠다. 전에는 천둥걸음이 너무나 멀고 무서운 존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가란에게는 그의 따뜻함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어른들은 왜 천둥걸음의 웃음소리에 그토록 겁을 먹었을까? 아버지는 왜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을까? “칼을 내려라. 두려워하지 마라.” 가란에게는 그 말이 너무도 또렷하게, 가슴 깊은 곳까지 들렸다. 그 말을 듣고도 누군가가 두려워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천둥걸음에게는 자기 목소리가 있는데, 사람들이 왜 천둥의 목소리들에게 그 뜻을 풀어 달라고 해야 하는지, 사실 가란은 그것부터 궁금했다.

말레딕션 공식 삽화 — Thundersteps